축구선수 정대세와 연구자 정영환, 그들은 자신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이니치’(在日), 즉 재일조선인이라고 규정한다. 정대세는 말한다. “내가 대표하는 건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자이니치다.”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성장통의 질문 과정을 거쳐, 여전히 스스로를 ‘자이니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과 경험에서는 남과 북이라는 적대적 정체성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동질적 정체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자이니치들이 일본 사회의 극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힘겹게 지켜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이니치’, 그 겹의 정체성은 역사가 강요한 상처였다.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닮아 있다.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그 작은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목각 인형 마트료시카. 정대세·정영환과 같은 젊은 자이니치들은 그 겹의 정체성 모두를 자긍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목각 인형의 허리를 비틀어 과거의 정체성을 끄집어내고 그중 하나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가 비틀어버린 것은 겹의 정체성을 살고 있는 자이니치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추방으로, 한편에서는 입국 거부로 대응하는 졸렬한 우리의 인식과 제도야말로 역사에 의해 뒤틀린 것이라는 반성과 인식이 필요하다.
-한겨레 6월 25일자 정정훈 변호사 칼럼 중
‘자이니치’, 그 겹의 정체성은 역사가 강요한 상처였다.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닮아 있다.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그 작은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목각 인형 마트료시카. 정대세·정영환과 같은 젊은 자이니치들은 그 겹의 정체성 모두를 자긍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목각 인형의 허리를 비틀어 과거의 정체성을 끄집어내고 그중 하나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가 비틀어버린 것은 겹의 정체성을 살고 있는 자이니치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추방으로, 한편에서는 입국 거부로 대응하는 졸렬한 우리의 인식과 제도야말로 역사에 의해 뒤틀린 것이라는 반성과 인식이 필요하다.
-한겨레 6월 25일자 정정훈 변호사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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